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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동지의 뜻과 풍속 정리

by 센스쟁이 고고링 2024.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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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의 스물두번째 절기로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오늘은 동지의 유래와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동지

동지(冬至)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남회귀선) 곧 황경(黃經) 270도의 위치에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 무렵에 동지를 맞이합니다. 양력으로 동지가 음력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태양력인 동지에다가 태음력을 잇대어 태음태양력으로 세시풍속을 형성시켜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하였습니다. 태양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 관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처럼 동지첨치(冬至添齒)의 풍속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또 동지는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 가는날’이라고도 부릅니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이날 생명력과 광명이 부활한다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로 삼았습니다. 당나라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에도 동지를 역(曆)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역경(易經)』에도 복괘(復卦)에 해당하는 11월을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을 일 년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신라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당(唐)의 선명력을 그대로 썼으며, 충선왕 원년(1309)에 와서 원(元)의 수시력(授時曆)으로 바뀔 때까지 선명력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로 보아 충선왕 이전까지는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짐작됩니다.

한편 구미(歐美) 각국의 성탄절(크리스마스)도 초기 기독교가 페르시아의 미트라교(Mithraism)의 동지 축제일이나 태양 숭배의 풍속을 이용해서 예수 탄생을 기념하게 한 것입니다. 신약성서에도 예수의 탄생 날짜 기록은 없습니다. 농경민족인 로마인의 농업신인 새턴(Saturn)의 새턴네리아 축제가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성했고, 그중 25일이 특히 동지 뒤 태양 부활일로 기념된 날이었습니다.

궁중풍속

궁중에서는 원단(元旦)과 동지를 가장 으뜸 되는 축일로 생각하여 동짓날 군신(君臣)과 왕세자(王世子)가 모여 잔치를 하는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습니다. 해마다 중국에 예물을 갖추어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하여 이날을 축하하였고, 지방의 관원(官員)들은 임금에게 전문(箋文)을 올려 진하(陳賀)하였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칩니다. 나라에서는 이 책에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달력은 황장력(黃粧曆), 청장력(靑粧曆), 백장력(白粧曆)의 구분이 있고, 관원들은 이를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것을 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습니다. 이조(吏曹)에서는 지방 수령들에게 표지가 파란 청장력을 선사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달력은 내용이나 효용도에 따라서 많이 다릅니다. 특히 옛날에는 농경 본위의 사회였던 만큼 24절기 등 때에 맞추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달력이 요긴하였고, 기재 내용도 그에 맞게 다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즈음에도 동지 무렵의 연말연시가 되면 새해 달력을 주고받는 풍속은 여전합니다.

황감제(黃柑製)라는 임시 과거를 실시하여 인재를 등용하기도 하였는데,『동국세시기』11월조에 제주목에서 귤, 유자, 귤감을 진상하는 일을 적고 있습니다. 이 귤들을 종묘에 진상하고 신하들에게도 나누어주었습니다. 옛날 탐라의 성주가 이를 바칠 때 치하하는 의미에서 과거를 설치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이를 답습하여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에게 시험을 보이고 귤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과거의 이름을 감제(柑製)라 했습니다. 내의원에서는 소의 다리를 고고 여기에 백강(白薑), 정향(丁香), 계심(桂心), 청밀(淸密) 등을 넣어서 전약(煎藥)을 만들어 진상하였는데, 각 관청에 이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약은 악귀를 물리치고 추위에 몸을 보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동지가 되면 동지하례(冬至賀禮)를 행하며 버선을 선물하는데 이를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고 합니다. 또 종묘에 청어(靑魚)를 천신하는데 경사대부(卿士大夫)의 집에서도 이를 행하였다고 합니다.

민간풍속

동짓날 연못의 갈라진 얼음의 모습이 마치 쟁기로 밭을 갈아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을 갈이[龍耕]이라고 합니다. 『동국세시기』 11월 월내조에는 “충청도 홍주 합덕지에 매년 겨울이 되면 얼음의 모양이 용이 땅을 간 것 같이 되는 이상한 변이 있었습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언덕 가까운 쪽으로 세로 갈아나간 자취가 있으면 이듬해는 풍년이 들고,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복판을 횡단하여 갈아나가면 흉년이 든다고 합니다. 혹 갈아나간 흔적이 동서남북 아무 데로나 종횡으로 가지런하지 않으면 평년작이 된다고 합니다. 농사꾼들은 이것으로 이듬해의 농사일을 징험 합니다. 경남 밀양 남지에서도 용이 땅을 갈아 이듬해의 농사일을 징험 한다고 합니다.

또 이날은 동지부적(冬至符籍)이라 하여 뱀 ‘사(蛇)’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 속신(俗信)이 있으며, 팥죽을 쑤어먹지 않으면 쉬이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성행한다는 속신이 있습니다. 동짓날 일기(日氣)가 온화하면 이듬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여깁니다. 또 동짓날이 추우면 해충이 적으며 호랑이가 많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예부터 동짓날이 되면 백성들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겼습니다. 또 일가친척이나 이웃 간에는 서로 화합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마음을 열고 풀어 해결하였습니다. 오늘날 연말이면 불우이웃 돕기를 펼치는 것도 동짓날의 전통이 이어 내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동지에는 동지팥죽을 먹습니다.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를 만들어 넣어 끓이는데, 단자는 새알만 한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릅니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내고, 각 방과 장독, 헛간 같은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두었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습니다.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의 뜻이고 집안 곳곳에 놓는 것은 축귀의 뜻이어서 이로써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낸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팥의 붉은색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붉은팥은 옛날부터 벽사(辟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모든 잡귀를 쫓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동국세시기』에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되어 붉은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 행위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동짓날이라도 동지가 음력 11월 10일 안에 들면 애동지라 하여 아이들에게 나쁘다고 해서 팥죽을 쑤지 않습니다. 또 그 집안에 괴질로 죽은 사람이 있어도 팥죽을 쑤어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기도에서는 사당에 팥죽으로 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장광 등에 한 그릇씩 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습니다. 경상도에서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가지에 적셔 집안 대문을 비롯하여 담벼락이나 마당에도 뿌리며 마을 입구에 큰 고목에도 뿌려 잡귀들의 동네 침입을 막습니다. 강원도에서는 팥죽의 새알심으로 찹쌀이나 수수쌀로 만든 ‘옹심’을 넣어 나이 수대로 먹습니다. 일꾼들은 이날 팥죽 아홉 그릇을 먹고 나무 아홉 짐을 져야 한다고 합니다. 날씨가 더워서 팥죽이 쉬면 이듬해 농사가 풍년이라고 여깁니다. 충남 연기에서는 동짓날 동지불공(冬至佛供)을 드리러 절에 다녀오며, 집에서 팥죽을 쑤어먹는다고 합니다. 또 애기동지에는 팥시루떡을 해 먹고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어먹습니다. 그리고 중동지 떡이나 팥죽 중 하나를 해서 먹습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喪家)에 보내는 관습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팥죽은 동지에만 쑤어먹는 것이 아니고 이웃이 상(喪)을 당하였을 때 쑤어 부조하기도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는 팥죽, 팥밥, 팥떡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요즈음도 이러한 풍습이 이어져 고사를 지낼 때에는 팥떡을 해서 고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고사의 목적은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이 번성하기를 기원하고, 공사를 하는 사람은 공사가 아무런 사고 없이 완공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팥이 들어가는 음식은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믿었지만, 그 사실 여부를 떠나 팥이 지닌 여러 가지 효능으로 보아 건강식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팥은 피부가 붉게 붓고 열이 나고 쑤시고 아픈 단독에 특효가 있으며, 젖을 잘 나오게 하고 설사, 해열, 유종, 각기, 종기, 임질, 산전산후통, 수종, 진통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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